‘로그아웃’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아름다운 그대에게

김지윤 기자

돌아왔다, 오프라인… 되찾았다 온전한 나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디톡스’ 바람이 불고 있다. 이들은 현실적이고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오프라인 모임 등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중이다.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디톡스’ 바람이 불고 있다. 이들은 현실적이고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오프라인 모임 등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중이다.

다시, 디지털 디톡스 바람이 분다.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번진 이 바람은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거나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휴식을 통해 피로한 심신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던 과거의 것과 다르게 현실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재미를 추구하며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이들과의 공유를 통해 연대의 힘을 얻는 모양새다.

의지는 습관의 또 다른 이름

지난여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작곡가 코드 쿤스트가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임을 인정하며 디지털 디톡스를 단행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10시간 동안 개봉이 불가한 ‘금욕 상자’에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를 넣은 그는 이후 “모든 것이 마비되기 시작했다”며 금단 현상에 따른 괴로움을 호소했다.

코드 쿤스트가 디지털 디톡스를 단행하는 모습.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갈무리.

코드 쿤스트가 디지털 디톡스를 단행하는 모습.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갈무리.

고통은 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위험군과 잠재적 위험군을 포함한 과의존 위험군 수치는 23.6%다. 국민 4명 중 1명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인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는 “디지털 중독을 포함한 현대인의 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3일, 사회 초년생 유초롱씨는 ‘일일 평균 스크린 타임’이 19시간에 달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잠드는 날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하긴 했지만, 또렷한 수치로 돌아온 증거는 공포에 가까웠다. 이대로 두었다간 ‘스몸비’(스마트폰+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다고 당장 스마트폰을 해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씨는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각종 광고 채널, 쇼핑 앱, e메일 등의 알림 서비스를 ‘오프(OFF)’로 설정했다. 잠금 화면에 표시된 알림을 보고 이를 클릭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 인터넷 사용이 불가피할 때는 노트북을 이용해 피해 의식만 남기는 소셜미디어로의 발길을 차단했고, 영상을 시청할 땐 스마트폰의 ‘앱 시간제한’ 기능을 활성화해 과도한 몰입을 방지했다.

유씨는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금단 현상과 후폭풍을 줄일 수 있는 묘안이다. 절제하며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문명의 이기가 어디 있겠느냐”며 “다만 내 의지를 믿어서는 안 된다.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이 기억하는 습관뿐”이라고 강조했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인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는 “디지털 중독을 포함한 현대인의 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인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는 “디지털 중독을 포함한 현대인의 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생 박동영씨는 종종 문자메시지나 전화가 오지 않았음에도 진동을 느낀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유령진동증후군’을 경험했다. 손목터널증후군으로 물리치료를 받는 순간에도 ‘카톡’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고 했다.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거나 속도가 늦어지는 순간이면 자신도 모르게 초조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지킬 앤드 하이드’라 놀렸다.

박씨는 “잠들기 전 습관처럼 ‘쇼츠’를 즐겨 봤다.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라 시간적인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며 “영양가 없는 콘텐츠에 수면 시간을 빼앗겼다는 자괴감과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에 노출되며 피로감이 누적됐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박씨는 자신의 스마트폰 사용 패턴을 분석,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유튜브 앱부터 홈 화면에서 지웠다. 화면을 스크롤하고 클릭하는 과정이 그의 관심을 사그라들게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에 스마트폰을 두는 습관도 들였다. 물리적 거리로 불편함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박씨는 “오랜 놀이터가 사라져 심심할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라면서 “앱을 닫으니 주변 사람들을 한번 더 챙기는 시간이 생겼고 책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선택적 정보를 취하게 되면서 관심사가 늘었고 동시에 집중력도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독립서점 ‘커피문고’에서는 매주 목요일 독서모임 ‘심야 책방(brunch.co.kr/@starry-garden)’이 진행된다. 책에 빠지는 순간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던 이들은 자발적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고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독립서점 ‘커피문고’에서는 매주 목요일 독서모임 ‘심야 책방(brunch.co.kr/@starry-garden)’이 진행된다. 책에 빠지는 순간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던 이들은 자발적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고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경기 용인시의 독립서점 ‘커피문고’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 독서모임 ‘심야 책방’이 진행된다. 함께하는 구성원들은 오후 7시30분이 되면 일제히 스마트폰 전원을 끈다. 급하게 주고받을 연락이 있다면 미리 공지를 하고, 진행형으로 오가는 대화는 서둘러 정리한 다음 전화기를 뒤집어놓는다. 누가 먼저 규칙을 정한 것도 아닌데 책에 빠지는 순간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던 이들은 자발적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고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가져온 책, 한 주 동안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30분이 훌쩍 흐른다. 이후 구글 타이머로 1시간을 맞춰두고 저마다 독서에 집중하며 함께, 그러나 따로인 시간을 보낸다. 타이머 알림이 울리면 읽은 책의 내용을 말하고, 질문을 나눈다. 모임을 주도하는 권규태 모임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디지털 디톡스란 산만함이라는 독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집중력이 앉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구성원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타인과 눈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권 모임장은 “바쁜 삶 속에서 분리돼 잠시 쉬고 싶다면 한번쯤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온라인에서 ‘함께’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디지털 디톡스’ 과정을 연재하며 누리꾼들의 응원을 받기도 하고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도전기’를 공유하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도 목격된다. 디지털 기기에 지친 사람들을 상대로 디지털 디톡스 캠프를 주선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참가자들은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산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디지털 기기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을 갖는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폴더폰 사용자임을 밝힌 배우 한소희(@xeesoxee). 유명인들의 구형 휴대전화 사용은 디지털 디톡스 바람에 화력을 더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폴더폰 사용자임을 밝힌 배우 한소희(@xeesoxee). 유명인들의 구형 휴대전화 사용은 디지털 디톡스 바람에 화력을 더했다.

인터넷 차단한 ‘바보폰’이 좋아, 왜?

디지털 디톡스 붐은 폴더폰과 피처폰 등 구형 휴대전화 거래량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피처폰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 사용된 최소 기능의 휴대전화다. 전화, 문자 등 기본적인 기능만을 갖추고 있어 ‘효도폰’이라 불리며 주로 고령자들이 이용해왔다.

중고거래 앱 ‘번개장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폴더폰과 피처폰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9%, 177% 늘었다. 디지털카메라 검색량 역시 전년 대비 94%, 캠코더 검색량은 81%가 증가했다. 스마트폰의 전화 외 기능을 대체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당근, 중고나라 등에서도 ‘상태 좋은 피처폰’을 구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박성준 트렌드 분석가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 순간에도 함께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온라인 속 공간에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이 탈출구로 구형 휴대전화를 찾고 있다”며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에게 구형 휴대전화는 그들이 추구하는 레트로, 복고풍을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유물인데 마다할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가수 잔나비, ‘디토’ 뮤직비디오에서 피처폰을 만져보고 있는 뉴진스, 인플루언서의 피처폰 언박싱 영상까지 유명인들의 사용기도 구형 휴대전화의 인기를 견인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배우 한소희의 발언은 ‘결정타’였다. 2016년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 폴더2를 사용 중인 그는 “폴더폰을 접을 때 ‘착’ 하는 소리가 매력적이고 사진도 나쁘지 않다”며 “앱이 되기는 하지만 느려서 휴대폰을 잘 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좋다”고 말했다.

해외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미국 경제매체 CNBC는 “화면에 지친 이들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덤폰’(바보폰), 즉 피처폰의 수요가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노키아’로 잘 알려진 HMD 글로벌 역시 미국과 영국에서 덤폰 판매가 늘어나며 단종된 모델을 재출시했다.

스마트폰 사용을 차단하는 디지털 디톡스 여행도 인기다. 힐리언스 선마을 제공

스마트폰 사용을 차단하는 디지털 디톡스 여행도 인기다. 힐리언스 선마을 제공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며 인터넷을 차단한 여행상품도 눈길을 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선마을’은 “여행객들이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숲멍(숲+멍때리기)을 즐기고 흙과 식물들을 접하며 재충전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며 전화와 문자, 인터넷 사용을 제한한다. 일본의 호시노 리조트 역시 11월1일부터 ‘스마트폰 디톡스 스테이’를 1일 1실 한정 판매한다. 스마트폰 사용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투숙객의 스마트폰은 호텔 체크인 이후 작은 상자에 봉인돼 사용할 수 없다.

핀란드 남동부 발트해에 있는 작은 무인도 울코타미오섬은 지난여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없는 관광지에 도전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텐트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해안선을 따라 걷거나 조류 전망대에 오르는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스마트 기기 사용은 불가하다.

정답은 없지만 방법은 많다

서점가 역시 뜨겁다. <잠시만 끊어보자고요>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하려는 이들의 교과서로 꼽힌다. 지난 4월 출간된 <도둑맞은 집중력>이 6개월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마트 기기의 순기능은 취하되 역기능이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인지하고 나만의 규칙,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마트 기기의 순기능은 취하되 역기능이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인지하고 나만의 규칙,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답은 없다. 다만 전문가들의 제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폰을 버리거나 무작정 디지털 기술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과학저널리스트이자 <How to Break Up with Your Phone>의 저자인 캐서린 프린스는 “디지털 디톡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마트폰과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칼 뉴포트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역시 “일정 기간 스마트폰 사용을 중단한다고 해서 중독을 없앨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집중력을 강화하는 훈련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비대면, 업무의 효율성 등 디지털 기기의 좋은 측면이 부각됐지만,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려진 불면증, 대인관계 기피, 도파민 중독 등 부정적인 요소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스마트 기기의 순기능은 취하되 역기능이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인지하고 나만의 규칙,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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