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적인 물질이 아니라 행위가 도파민 시스템에 작용할 뿐이다. 인간은 자극을 받을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와야 쾌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즐거운 행위의 도파민 점수가 100이라면 도박은 1000이다. 한 번 1000을 맛보면 다른 자극은 재미없어진다. 보상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게다가 똑같이 1000을 경험하려면 배팅 액수가 늘어나야 한다. 소위 말하는 내성이 생기고 중독으로 나아간다.
-도박에 중독되면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나?
사람에 따라 달라서 단정하긴 어렵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하나 있다. 빚을 내서 도박을 하다가 채무가 감당이 안 되면 가족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이때 거짓말을 한다. 도박중독자들의 특성이 자꾸 숨기고 축소하는 것인데 전세 문제, 친구의 상황 등을 이유로 돈을 빌려 달라하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층. 10대까지 도박에 중독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20년 전까지만 해도 도박은 40~50대의 전유물이었다. 이때는 도박을 하려면 경마장, 카지노, 하우스 등 실제 장소를 방문해야 했고 게임 한 판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직접 연구해본 적이 있는데 오프라인 도박이 주를 이룰 땐 중독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기 까지 평균 10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후로는 얘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불법 도박장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온라인 불법 도박은 베팅 액수에 한계가 없고 전 세계 도박장에 접근할 수 있다. 게임도 5분, 3분 만에 끝나는 것들이 많다. 전에는 10년 결렸던 게 1~2년 만에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실제 우리 병원에 도박중독으로 내원하는 환자들 중 20~30대가 제일 많다. 중학생 때 도박을 시작해 고등학생 때 심각한 수준으로 내원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많이 하는데 입대 전에는 도박에 도자도 모르다가 군대에서 배워가지고 의가사전역하는 사례도 봤다. 과거엔 없던 현상들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
최근 사회적인 분위기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파이어족’이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실제로 가능한 사례가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언론, sns에서 이런 사례를 접하면 괜히 잘 살고 있는 사람도 나만 뒤처지거나 빨리 큰돈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도박중독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박 중독의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사실 진단이 어려운 질환은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의 9가지 항목 중 4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도박중독이라 진단한다. ▲도박을 해서 돈을 번다는 집착 ▲베팅 액수가 점점 커지는 내성 ▲안 하면 짜증나고 불안해지는 금단증상 ▲그만두려고 해도 안 되는 조절실패 ▲일상에서의 기능 이상 ▲채무 ▲죄책감,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회피성 도박 ▲손실은 만회하려는 추격 도박 ▲거짓말 등이 있다.
문제는 초반에, 비교적 증상이 가벼울 때 내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도박중독도 초기에 치료를 시도하면 개선될 여지가 많을 텐데 이미 심각해진 걸 가족들이 알고 병원에 가자고 설득해 겨우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