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기 위한 현금이나 도박자금 등의 조달을 위해 절도 등의 범죄와 대리입금, 금품갈취 등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도박중독이 범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질병이라는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청소년 불법도박 예방 홍보 포스터ⓒ서울경찰청 #사례 1
충북의 한 고등학생은 중학생 때만 해도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불리는 학생이었다.
그러던 그의 인생이 친한 형들의 권유로 온라인 도박에 손을 대면서 180도 뒤집혔다. 처음엔 용돈으로 재미 삼아 시작했지만 운 좋게 큰돈을 벌면서 친구와 선배들에게 돈을 빌려 한 번에 수십만 원씩 배팅했다. 결국 1500만 원의 빚을 지게 됐다.
#사례 2
서울의 한 중학생이 사이버 도박으로 3월 한 달 사이에 1600만 원을 탕진한 뒤에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절도 행각을 벌이고 대리 입금을 이용해 300만 원을 빌려 매일 고금리의 빚 독촉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소년 온라인 도박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 이제 온라인 도박은 성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도박은 이미 교문을 넘어 학교에 침투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사이버도박 특별 단속을 벌인 결과 적발된 2천9백여 명 가운데 35%인 1035명이 만 19살 미만의 청소년이었다. 온라인 도박장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적발과 단속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 온라인 도박의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급기야 서울경찰청은 청소년 온라인 도박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5월 20일 ‘긴급 스쿨벨’을 발령했다. ‘긴급 스쿨벨’이란 청소년과 관련한 중요 사안이 발생하면 서울 시내 1374개교와 학부모 78만 명에게 실시간으로 주의·대응 요령을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시스템이다. 2021년 경찰청과 서울교육청이 함께 구축한 ‘긴급 스쿨벨’은 지난해 네 차례 발령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가 도박 중독 청소년의 조기 발굴을 위해 지난해 중1, 고1 대상 사이버 도박 중독 진단 조사를 한 결과 참여 학생 87만 7660명 중 사이버 도박 고위험군은 2만 8838명으로 파악됐다. 올해는 도박 중독 저연령화 추세를 고려해 초4까지 조사대상을 확대했다.
청소년이 온라인 도박 노출에 취약한 이유
청소년기는 감정적 동요가 있고 집단과의 동조성이 강한 특성이 있어 도박이 주는 승패의 자극적인 반응에 민감하다. 이들은 10초 이내에 승패가 결정나는 '바카라', '파워볼', '달팽이 레이싱' 등의 단순한 도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도박 범죄라는 생각이 아닌 단순한 놀이 문화라는 인식이 강해 초기 가담에 부담이나 죄책감이 없다.
성인 인증 절차가 없고 가입 방법이 간단해 접근성이 쉬운 것도 문제다. 청소년들이 자주 보는 불법 웹툰, OTT 사이트에서 도박사이트를 홍보하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노출이 쉽다. 실제로 SNS나 유튜브에서 ‘바카라’를 검색해 보니 도박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한 현금이나 도박자금 등의 조달을 위해 절도 등의 범죄와 대리입금, 금품갈취 등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교우관계나 학교생활에 큰 악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10대 청소년들이 단순히 도박을 하는 정도를 넘어, 직접 도박사이트를 만들거나 도박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 코딩 지식이 부족해도 가능한 이유는 유튜브 등에 도박사이트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을 정부당국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온라인 불법 도박 근절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범정부 대응팀 출범했다. 여기에는 법무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위원회, 대검찰청, 경찰청,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불법 도박사이트가 서버를 해외에 두는 경우가 많아 단속의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정부 당국의 대책이 주로 1회성 캠페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단속 강화 같은 단기 대책도 필요하고 학교의 예방교육도 필요하다. 청소년 도박 노출을 막기 위한 단속과 사이트 차단 등 선제 대응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한탕주의가 만연한 사회문화와 사행심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속과 규제 위주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교육청과 학교는 교육과정과 연계한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모든 청소년이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유럽의 선진국처럼 도박중독이 범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질병이라는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