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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과정? 선생님 그게 뭐예요?”
지난달 21일 서울 광진구의 한 문해력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초등학교 4학년 지우(가명)가 “가정해 보자”는 선생님 말에 뭘 하라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10줄 남짓의 짧은 글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는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90분 수업 내내 단어 뜻을 묻고 답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선생님 개최는 뭐예요?” 선생님은 문장 안에서 ‘개최’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지만, 지우와 친구들은 끝까지 개최의 뜻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초등 고학년이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반환’이라는 단어를 모르더라고요. 아이들이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단어 뜻만 물어봅니다.” 학원 대표는 최근 학생들의 문맥 속 단어 유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알파(Alpha) 세대. 인류통계학자들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인 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알파 세대라고 분류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옆에 스마트폰이 있었고, 영유아 때부터 직관적이고 단순한 영상 등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자랐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11월 말부터 한달 동안 ‘한겨레’가 만난 초등학교 교사 등 20여명의 교육전문가들은 알파 세대를 향해 “인류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책과 함께 사라진 문해력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뇌가 일찌감치 유튜브 등 짧은 영상 ‘쇼트폼’(Short-form)에 노출되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정적인 활동에 흥미를 잃게 됐다고 지적한다. “짧은 유튜브 영상은 서사가 없어요. 그저 게임처럼 자극으로 들어오는 거죠. 가만히 책 읽는 행위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하지 못해요.”(14년차 교사 김병섭) 스마트폰에 흥미를 뺏긴 아이들은 글을 낯설어하고 있다.
문해력 지표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보다 악화됐다. 올해 발표된 국제학업성취도(PISA) 지표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분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2009년 5.8%에서, 2022년 14.7%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원년으로 꼽히는 2010년 전후로 학생들의 문해력 차이가 눈에 띄게 벌어진 것이다.
“문제집을 푸는데 문제 자체를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고학년 문제도 아니고 자기 학년인) 4학년 문제집 푸는 데도 그런 문제가 생기니까… 말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광진구의 문해력 학원에서 만난 지우 역시 유튜브에 노출되며 책과 멀어진 경우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을 찾은 지우는 4학년이지만 문해력 학원에서 3학년 수업을 듣는 중이다. “주로 (게임 유튜버인) 도티 영상이나 쇼츠를 봐요. 가끔은 수업을 하다가 유튜브 영상이 떠올라 집중이 안 되기도 해요.” 지우는 하루 두세 시간 스마트폰을 본다고 답했다.
단어 풀이 시간으로 전락한 수업
일선 초등학교 현장은 문해력 저하 영향권에 든 지 오래다. 교사들은 “‘비교해봅시다’란 교과서 지문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비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교사 김병섭)거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발이 넓다’란 말을 몰라”(30년차 교사 이세경)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단어를 모르다 보니 계획대로 수업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18년차인 양해준 교사는 “매 순간 문장의 뜻이나 흐름을 짚어주면서 수업을 진행하니 목표한 진도의 3분의 1밖에 못 나간다”며 “자기 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알 만한 단어도 몰라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매일 있다”고 말했다.
일부 수학학원은 문제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독서 수업을 편성하기도 한다. 해당 수학학원 관계자는 “문제에 나온 대로 식을 쓰면 되는데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듣는 말이 너무 많아서 무슨 설명을 해줘도 머릿속으로 정보 처리를 못 하는 걸 보고 문해력 수업을 편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과 문해력이 반비례하는 경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길수록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전국읽기따라잡기연구회 공동회장으로 문해력 교육을 연구하는 박지희 교사는 “문해력이 낮은 것을 스마트폰 때문만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대체로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초등문해력교사연구회에서 활동 중인 이인희 교사는 “상대적으로 집중력(문해력)이 떨어지는 학급의 스마트폰 이용 현황을 조사했더니 하루 평균 네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한 아이들이 절반에 이르렀다”며 “반대로 차분한 분위기의 학급은 한두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쓰는 아이조차 2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뇌 발달 시기인 아동·청소년기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언어능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의 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스마트폰 과다사용 증상이 심할수록 언어 처리에 관여하는 ‘두정엽내구’와 ‘내측전두엽’ 간에 기능적 연결성이 떨어지는 걸 관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한 시간 이하로 디지털 기기 화면을 보는 어린이에 비해, 하루 두세 시간 이상 화면을 보는 어린이들이 어휘 습득 능력이 떨어진다는 외국 연구 결과도 있다.
문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하기 어려워하는 주의사용자군,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위험사용자군 등을 포괄하는 과의존사용군은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학령 전환기(초등학교 4학년, 중고등학교 1학년) 학생 127만6789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13만1560명이 과의존사용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과 견줘 소폭 감소했지만 지난해까지 내리 4년 동안 증가세를 기록했다. 초등학생 중에선 과의존 위험군 학생 비율이 지난해(15.97%)보다 늘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서 학생들은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 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탓도 있지만, 글을 읽는 방식이 바뀐 영향도 크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병섭 교사는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형’으로 읽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스크롤 넘기듯이 키워드만 대충 보고 넘기는 경향이 있다. 스쳐 읽으니 이해력도 엄청 떨어진다”며 “학생들에게 손가락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짚어가면서 글을 읽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볼 때 사람들은 눈동자를 영어의 에프(F)자 형태로 움직이며 첫 문장만 보고 다음 단락으로 곧장 내려가는 형태를 보이는데, 책을 읽을 때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짧아진 독서 호흡에 맞춰 출판계도 변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읽는 도서들의 원고 분량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그림의 분량은 늘었다. 출판업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과거엔 3~4학년 대상 소설책이 250페이지 정도였다면 지금은 180페이지로 28%가량 줄었다. 초등문해력교사연구회 설립자인 김용세 교사는 “토지, 태백산맥 같은 책은 요즘 애들에겐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대표적인 아동 문학인) 해리 포터도 수준 있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