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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은(가명·8)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과 놀 줄 모르고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요구하지만, 선생님의 지시엔 무반응이다 보니 선생님과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리에 앉아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런 지은이를 신나게 하는 ‘친구’는 스마트폰이었다. 지은이는 유튜브가 좋았다. 자기 또래의 ‘키즈 유튜버’들이 과자를 먹고 리뷰를 올리는 먹방(음식 먹는 방송)이 지은이의 최애 영상이다. 하루 평균 3시간,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엔 8시간씩 유튜브와 함께했다.
‘눈알 젤리, 지구 젤리 먹으면 입속에 팍 터져요. 파란 지구 젤리 먹으면 화장실에서 파란 똥이….’ 지은이는 유튜브를 보지 않을 때도 영상 속 대사를 중얼거렸다. 키즈 유튜버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이를 촬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폭력적인 영상도 (나쁜 걸 모르니까)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못 하게 스마트폰을 뺏으면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때려요.” 부모가 유튜브를 못 보게 막자 지은이는 부모 휴대전화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불·옷장에 숨어 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만 쥐면 유폐된 듯 보이는 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는 “스마트폰이 아이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유아동 스마트폰 과의존 척도’로 점검한 결과, 16~28개월께 처음 유튜브를 접한 지은이는 잠재적 위험군에 해당했다. 엄마는 결국 선생님의 권유로 종합심리평가를 받아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소꿉놀이가 안 된다.” “아이들이 (서로의) 감정 파악을 어려워한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알파세대’가 읽기 어려워하는 건 문자의 맥락(문해력)뿐만이 아니었다. 11월 말부터 한달 동안 ‘한겨레’가 만난 보육·교육 현장 교사들과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교감의 시간을 스마트폰이 앗아가면서 ‘관계의 맥락’ ‘감정의 맥락’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영유아는 부모나 또래의 표정, 단어, 목소리 톤, 신체적 반응을 통해 단계적으로 성장하는데, 상호 작용이 불가능한 전자기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성 발달이 저하됐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