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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쇼츠의 시대, 속도와 함축이 가져온 역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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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창동iwill   조회수 : 1,425회   작성일 : 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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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에 '순삭'이라는 것이 있다. '순간 삭제'의 줄임말이다. 줄임말의 유행은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에 이르면 거의 외래어 같다. 모든 단어를 줄여서 말하는 젊은이들은 도대체 왜 그리 바쁘고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속도의 강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한 하이데거의 말이나 '언어를 사고는 지배한다'는 사피르-위프의 말을 언급하지 않아도 언어는 한 사회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사회는 너무나 바쁘다. 현대사회는 멀티태스킹이 요구되는 세상이다.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창을 서너 개 띄우고 작업을 하면서 인터넷과 챗GPT에 접속해 자료를 찾고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면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고 아이패드와 모바일 폰을 열어두고 작업하는 멀티태스킹의 모습은 익숙한 우리의 일상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통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요즘 젊은 세대는 단군이래 최대의 텍스트를 읽어내는 세대이기도 하다. 놀라운 속도로 스마트폰에서 정보와 뉴스를 읽어내는 그들은 스마트폰의 무한 스크롤(화면 하단에 닿으면 정보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 나타나는 것)에 묶여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정보와 텍스트를 끝도 없이 읽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넘치고 변화도 빠른 시대를 살다 보니 일할 때는 물론 쉴 때도 시간을 아끼고 트렌드를 쫓는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스포츠 중계, OTT의 화제작, 새로 개봉한 영화를 따라가려면 몇 시간씩 투자해야 하는데, 요즘은 줄거리를 요약해 주고 핵심 장면과 대사를 정리해주는 콘텐츠들도 생겨난다. 이제 영화 두 시간도 길다.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유튜브, 틱톡과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넘치는 것은 쇼츠, 릴즈 등 1분이내의 짧은 숏폼 콘텐츠들이다.

문제는 그러한 압축된 정보는 전체가 아니라 단면이기 때문에 사고의 깊이와 성찰을 가져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빠르게 정보를 취한 것만으로 그것에 대해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식사 후 한담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가능하겠지만 흘낏 들여다본 것과 '안다'의 차이는 그 기억의 시간과 깊이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있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정보의 잔류시간조차 길지 않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라는 전략이 있을 정도로 숨 가쁘게 쏟아지는 최신기사와 받아쓰고 베껴쓴 기사들로 넘친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탐색하고, 시간과 노력을 당겨써서 초스피드로 일을 해치운 결과는 과연 성공적일까? 의외로 썩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생산성이 높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사실 집중하지 않고 분산된 결과가 생산성이 높을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중독과 편향, 조바심과 산만함, 불안과 집착이라는 역기능도 따라온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숙의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책이나 신문, 논문같은 인쇄매체를 읽을 때는 찬찬히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찰하거나 비판하는 작업들이 뒤따른다면 SNS에서 기사를 볼 때는 수많은 기사와 이슈들을 후루룩 보게 되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단어에 머물게 된다. 각종 뉴스도 언론사에서 추천하는 알고리즘대로 받아들이다 보니 필터버블에 갇히고 확증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사건과 의제에 대해 그 원인과 구조, 의미 등에 대해 숙고할 틈이 없다. 매우 중요한 이슈조차 건전한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반대편의 확성기 언어들과 뒤섞여 흘러가 버린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선봉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언론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찰력과 비판의 거리라고는 찾을 수 없고 뉴스 의제가 계속 바뀌고 쌓이는 바람에 너무 산만해져서 어떤 정치적 입장도 성숙될 수가 없는 위험에 처해 있다. 언론의 역할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의 각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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