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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독재자라면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싶습니까?”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디지털 해독 정책을 강하게 시행하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지인은 놀란 눈치였지만, 나는 진지했다. 내가 제안했던 디지털 해독 정책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소셜미디어의 친구 수를 수백 명 이하로 제한하겠다. 무분별한 온라인 네트워크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희석하고 있다. 국제저널인 ‘성격과 개인 차이’에 캐나다 라이얼슨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소셜미디어 사용량이 높은 이들의 자존감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이들과 연결된 이들이 오히려 자기 내면과의 관계는 악화한 경우가 많은 셈이다. 또한, 소셜미디어 속 관계에만 의존하면서 현실 세계 속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둘째,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하루 총 3시간으로 제한하겠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사용도 하루 3시간으로 제한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편하게 즐거움을 누리지만, 이런 서비스들 역시 역설적으로 우리의 활동과 관계를 제한하는 부분이 많다. 스마트폰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는 디지털로 연결된 범위 내에서만 활동하게 되는데, 우리 삶 전체가 디지털로 들어와 있지는 않다. 즉,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보여주는 범위 안에 자기 삶을 가두는 셈이다.
물론, 이런 정책은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목적은 분명하다. 디지털 기기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파민을 제공한다. 가볍고 편리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것에 중독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형성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 단단한 관계와 깊은 기쁨을 멀리하고 있다. 현실 세계를 넓게 탐험하며 도전하기보다는 디지털 기기 뒤에 나를 감추고 싶어 한다. 디지털 기기가 제공하는 가벼운 도파민은 우리를 디지털 세상 속에 가둬두고 있다. 나는 디지털 해독을 꿈꾸는 독재자로서, 이런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은 디지털 기기를 만들었지만, 그 기기들이 이제 인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인간의 모습인가? 나는 확신한다. 적어도 내가 꿈꾸는 인간의 모습은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니다. 영화 속 디스토피아 세계에서는 거대한 인공지능, 로봇 군단이 인간을 지배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미래에 도달해버렸다. 다만,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주체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로봇이나, 인간의 지능과 의식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우리 일상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 서비스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소설 ‘멋진 신세계’(1932)에서 문명은 최고도로 발달했지만 인간이 기계와 약물에 의존하여 가벼운 쾌락을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와 인간성이 상실된 미래 사회를 묘사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 멋진 신세계에 도달했는지 모르겠다. 멋진 신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누가 나서야 할까? 독재자의 등장을 기대해야 할까? 아니다. 독재자보다는 우리가 나섰으면 한다.